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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살아 있는 6ㆍ25전쟁 이야기 ]여든아홉이 되어서야이 이야기를 꺼냅니다

by 오타쟁이 2019.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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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을 때는 나라가 없었고, 광복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한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세대에 대한 회고록”

 

 

 

이 책은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우리나라를 지켜낸 선배 세대의 기록이자, 아픔의 기록이다. 태어났을 때는 나라가 없었고, 광복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한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세대에 대한 회고록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선배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한준식 님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셨고, 추천사를 적고 있는 나는 반공을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대한민국 미래의 인재들은 반전을 배우며 자라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겼다는 저자의 뜻에 깊이 공감하며, 이 책이 반공보다는 반전을, 분열과 반목보다는 화합과 번영을 그려나가는 시대의 첫 단추가 되길 응원한다. - 설민석
■■ 책 소 개 
여든여덟의 어느 날,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든아홉의 어느 날, 거대한 기적을 기다립니다

손녀는 여느 때처럼 할아버지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려고 책장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날따라 일기장 옆에 꽂힌 손때 묻은 책에 눈길이 갔다. 꺼내 보니 앞면에 투박한 글씨로 ‘6․25참전전투기록’이라 적혀 있는 두툼한 노트였다. 흥미가 동해 한 장, 한 장 넘기다, 그것이 할아버지가 6․25전쟁 때 겪은 일을 기록해둔 노트라는 걸 알게 된다.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은 그녀는 생각한다.
‘할아버지 글이 이대로 묻히는 건 너무 아깝잖아?’
그녀는 이 노트의 내용을 하나하나 타이핑한다. 책을 만들려고 알아보니 제작비가 너무 비쌌다. 하는 수 없이 동네 출력소에서 10부 정도 약식 제본을 해 조촐하게 가족들과 나누어가졌다.
그래도 왠지 성에 차지 않았다. 이런 기록은 널리널리 알려져야 할 것만 같았고, 할아버지 그림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로 했다.
‘88살 할아버지의 특별한 그림일기.’
이런 제목을 달고서 할아버지가 쓴 글을 발췌해 넣고, 할아버지가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 글이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그녀의 게시글은 순식간에 조회 수가 치솟더니 무려 20만 회를 넘어섰다. 댓글에는 각양각색 반응이 줄을 이었다. 대체로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의 가치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교과서에 실어도 되겠는데요.” “후대에 남길 소중한 기록유산인 듯” “할아버님 덕분에 지금 저희가 이렇게 살고 있는 듯합니다.”
처음 온라인상에 글을 올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이런 케케묵은 6ㆍ25전쟁 이야기에 관심 갖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영 딴판이었다. 할아버지는 기적이라고 하셨다. 손녀 덕에 여든여덟에 팔자에도 없는 유명인사가 되었다면서.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게시글로 연이 닿게 된 출판사와 정식 출간 계약을 맺게 된 것.
물론 할아버지의 기록을 있는 그대로 출간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손녀는 할아버지의 구술을 토대로 비어 있는 부분을 메워 나갔다. 그렇게, 할아버지가 꾹꾹 눌러 쓴 기록을 잘 다듬고, 살도 붙여서 원고를 완성해냈다.
여든아홉이 된 할아버지는 마침내 평생 꿈꿔본 적조차 없는 일, 즉 자기 이름을 내건 책을 출간하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 책이 수많은 이들과 만나 더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기적을 기대하면서.


고작 스무 살,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의 고지를 홀로 빠져나온 나, 그날, 거기의 기록

이렇듯 평범하지 않은 사연을 품고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이 책은 가장 빛나는 청춘의 날들을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보내야 했던 어느 이름 없는 군인의 전투 일지다.
해남의 평화로운 마을에서 정다운 가족들과 농사를 짓고 김 양식을 하고 고기를 잡으며 소박한 행복을 누리던 어느 날, 스무 살 청년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도착한다. 때는 1950년, 6ㆍ25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그가 참전했던 ‘백운산 토벌 작전’ ‘지리산 토벌 작전’ ‘난초고지 탈환 작전’ ‘독립고지 작전’ 등은 6ㆍ25전쟁 당시 치러진 많은 전투들 중에서도 매우 치열하고 참혹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그때, 그곳에서 목도했던 모든 장면과 상황을 마치 그림 그리듯 세밀하게 묘사한다. 실제로 그는 당시 전투가 일어났던 곳들의 지형을 정확하게 그림으로 남겨두기도 했다.
그가 기억을 되살려 이 기록을 남긴 것은 2000년, 그의 나이 일흔 살 때였다. 후손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려 두 번 다시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선 안 된다는 것을 인식시키고 싶어서였다고.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박제된 6ㆍ25전쟁 이야기는 이 책 어디에도 없다. 눈물 바람을 일으키는 위대한 영웅담도 당연히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 책은 자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역사적 비극 앞에서 힘없는 개인이 어떻게 묵묵히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갔는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본성이 어디까지 드러날 수 있는지, 그저 살아 숨 쉬며 평화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다. 내용 곳곳에는 전쟁소설이나 전쟁영화가 다 담아내지 못하는 리얼리티가 살아 숨 쉰다. 책장을 덮고 나면, 먹먹하고 묵직한 감동이 한동안 당신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 저 자 소 개 
한준식
1931년 해남에서 태어났다. 1949년 영명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을 도와 농사도 짓고, 고기도 잡고, 김 양식도 하면서 가족들과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스무 살이 되던 해인 1950년 6ㆍ25전쟁을 맞았다.
전쟁이 터지면서, 화목하고 평화로웠던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중, 1951년 형에 이어 입대를 하게 된다. 이후 광주 제5015 부대에서 백운산 토벌 작전에 투입되고, 곧 수도사단 기갑연대로 적을 옮겨 지리산 토벌 작전을 완수한다. 다시, 금화지구로 출발해 중동부 전선 난초 고지, 독립 고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허벅지에 포탄 파편을 맞고 심하게 부상을 입는다. 결국 야전병원으로 옮겨져 응급 치료를 받은 다음, 서울 제36 육군 병원을 거쳐 울산 제23 육군 병원에서 한 달 동안 입원 치료를 받았지만 완치되지 못한 채 퇴원한다.
1953년 보충대 대기 중 육군 보병학교로 차출되어 전선과는 멀어졌으며, 1956년 11월 20일 마침내 5년이 넘는 군 생활을 무사히 마감하고 명예롭게 제대했다. 제대 후에는 건축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실한 일꾼이자 한 가정의 든든한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아왔다.
이 책에는 1951년 입대 직후부터 1953년 육군 보병학교로 차출되기까지 치열했던 전투의 나날들을 담았다.



■■ 차 례

들어가며_ 내가 지금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

1장_ 스물한 살, 나라의 부름을 받고
2장_ 내 생애 첫 번째 전투
3장_ 죽이지 마라, 생포하라
4장_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
5장_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들
6장_ 홀로 지옥을 빠져나오며
7장_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마치며_ 살아남았으므로, 나는 쓴다
사진자료



■■ 추 천 사
이 책은 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우리나라를 지켜낸 선배 세대의 기록이자, 아픔의 기록이다. 태어났을 때는 나라가 없었고, 광복의 기쁨을 누린 것도 잠시, 한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들이댈 수밖에 없었던 서글픈 세대에 대한 회고록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차마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대한민국을 지켜내신 선배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 책의 저자인 한준식 님은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경험하셨고, 추천사를 적고 있는 나는 반공을 배우며 자랐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을 대한민국 미래의 인재들은 반전을 배우며 자라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겼다는 저자의 뜻에 깊이 공감하며, 이 책이 반공보다는 반전을, 분열과 반목보다는 화합과 번영을 그려나가는 시대의 첫 단추가 되길 응원한다. - 설민석



■■ 본 문 중 에 서
아프고 나서야 건강을 챙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전쟁이 터지고 나서야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금,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나는 진심으로, 한반도에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을 읽으며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전쟁을 온몸으로 경험한, 역사의 산 증인인 내가 사랑하는 손주 세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임무라고 믿는다.
또 하나, 이 땅에는 나처럼 가장 찬란한 청춘의 날들을 고스란히 전쟁터에서 보낸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누구든 한 번쯤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큰 대접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라를 위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희생도 불사했던 참전 용사들이 외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단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그저, 이들의 존재를 당신이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뿐이다.   ■ 들어가며_ 내가 지금 전쟁을 이야기하는 이유/pp.11-12

그 전우는 그 큰 낫을 들고는 서슴지 않고 성큼성큼 시체가 놓인 자리로 걸어갔다. 곧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낫을 들어 올렸다. 두세 번 정도 낫으로 목을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낫을 내리칠 때마다 “악!” 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윽고 시체의 목을 다 자른 그는 “으윽”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일어섰는데, 그러고 나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한참 동안을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여 있을 때, 다시금 대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자, 이제 누가 이 시체의 머리를 들고 갈 것인가?”   ■ 2장_ 내 생애 첫 번째 전투/pp45-46

나는 잉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돌아갈 생각을 하니 한껏 기분이 들떴다. 좀 더 잉어를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에 떠내려오는 잉어를 닥치는 대로 잡으며 강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던 그때였다.
“저게 뭐지?”
잉어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떠내려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했다.
“으악!”
다름 아닌 중공군 시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두 구가 아니었다. 중공군 시체가 점점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무더기로 떠내려오고 있었다.   ■ 4장_ 지독한 굶주림 속에서/p.109

총알 몇 방 맞고 죽은 이들은 차라리 행운이었다. 포탄에 맞은 이들은 아예 공중에서 산산조각 부서졌다. 거기에 있는 시체 대부분이 원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으로 흩어져 있었다. 머리, 다리, 몸통, 창자가 갈기갈기 찢어져 어지러이 나뒹굴고 있었고, 바닥에는 핏물이 흥건했다. (…)
“차폐하라! 차폐하라!!”
누군가가 외쳤지만 이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전투하기 전에 파놓았던 교통호가 포탄 세례로 다 무너져 차폐하기가 너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비 내리듯 날아오는 포탄을 어떻게든 피해야 했다. 나는 그 조각 난 시체더미 아래 몸을 숨겼다.   ■ 5장_ 아무도 돌보지 않는 죽음들/pp.127-128

나는 벌게진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물이 솟는 곳을 간절히 찾았다. 그러고는 그곳을 향해 죽기 살기로 기어갔다. 물가에 맹감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이파리를 하나 따서 물잔처럼 오므려 물을 받았다. 그대로 물에 입을 대는 순간,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아, 저 사람들은….’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로 죽어 있는 아군들의 시체가 물가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다. 나처럼 부상을 입고 피를 많이 흘린 상태에서 물을 먹었다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린 이들이었다.
‘지금 이 물을 마셨다간 나도 저렇게 죽겠구나.’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는 그 시체들을 보며 물을 한 모금 입에 넣고 우물우물했다가 뱉었다. 그렇게 세 번 정도 물을 머금고 뱉었다가 그대로 쓰러져 누웠다.   ■ 6장_ 홀로 지옥을 빠져나오며/pp.165-166

“준식아, 엄마다. 먼젓번 편지를 보내고 아무 연락이 없어 얼마나 우리를 원망했느냐. 네가 퇴원하고 보충대로 떠나는 날에야 우리가 병원에 도착했단다. 해남에서 울산까지 가는 게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했더니 방금 떠났다고 하기에 다시 집으로 내려왔다. 아버지가 너무나 서운해하고 안타까워하셨단다.”
어머니의 편지를 보니 역시나 그날 내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부모님과 아깝게 엇갈린 것이 몹시 아쉬웠다. 그 먼 길을 얼마나 고생하며 오셨을까. 그렇게 겨우 왔는데 다친 아들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니,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
알고 보니,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나를 제대시켜볼까 싶어 고향에서 황소 한 마리를 팔아서 그 큰돈을 싸 들고 오셨다고 했다. 음식도 많이 싸오셨는데, 내가 없으니 그곳 환자들에게 전부 나누어주고는 빈손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왈칵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 7장_ 집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pp.18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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