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책소개
오늘날 소진사회에서 인간은 어떻게 진정한 주체로 살아 갈 수 있으며, 종교는 그 길에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 책은 인문학과 종교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현 시대의 특징인 성과-소진 사회를 진단한다. 또한 삶의 중요한 화두들을 장치이론에 근거하여 비판함으로써 비극 가운데서도 생생한 기쁨과 생명으로 살아 갈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단지 이론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의 주요 화두들을 깊이 성찰하고 그 해답을 모색하도록 돕는다. 먼저, 장치에 포획당하지 않는 길을 모색한다. 다음으로 사랑, 집, 배움, 주체화, 일, 생생하게 살아있기, 종교적 가치관 등 일상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희망을 찾아보게 할 것이다.
2. 목차
프롤로그 / 13
1장. 장치에서 벗어나기 / 31
삶의 변화는 장치의 패러다임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 36
야생의 아이, 창조의 놀이터 / 51
2장.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 / 65
오레스테이아, 선악구조를 넘어선 대립과 연민 / 67
명증할 수 없는 ‘절뚝거리는 영웅’ / 74
비극, 삶에 대해 묻다 / 83
웃음과 명랑으로 새로운 탈주로를 / 90
3장. 무의 사색 / 107
생의 문턱, 무의 사색 / 112
무를 관조하는 사이의 시선 / 123
무아와 무위 / 127
무위의 위, 레이마들 / 133
4장. 타자,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 145
배열의 틈에 빛이 들어올 때 / 147
사랑에 긴장이 새겨지면 / 154
사랑은 가치전복의 선물 / 160
에로스와 아가페, 聖과 性 / 168
사랑은 진화하는 권능 / 179
5장. via vita, 생생하게 살아있기 / 185
절편화된 차이의 접속점들을 모색하며 / 192
균열을 내서 경이로움에 빠지기 / 199
고통과 기쁨의 상생, 차이의 변주곡 / 205
6장. 마음 공부 / 213
마음을 공부한다는 것 / 214
마음의 지향조건 / 224
몸과 함께 / 230
7장. 노마드의 집, 아버지의 집 / 241
사는 곳이 집이지 / 242
보이지 않는 집 / 245
변용 능력으로 생성되는 집 / 248
탈경계와 재영토화의 집 / 258
아이온, 생명의 집 / 267
8장. 영원의 유토피아, 신 없이 신과 함께 / 275
유토피아의 계기는 메타노이아 / 277
경계 없이 도래하는 성소들 / 289
마음, 기도와 연대의 문 / 296
색인/ 303
3. 책 속으로
프롤로그
밤의 해변에 나서면 검은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보인다. 구원의 빛처럼 보이는 등불은 실은 쪽배에 작은등을 단 것으로, 그 빛에 몰려드는 오징어들을 포획하기 위 한 장치다. 초라하지만 잔인한 이 실상은 멀리 바닷가에서 산책하며 바라보는 구경꾼들에게는 그저 아름다운 밤바다의 풍경이리라. 삶은 멀리서 바라볼 때는 그저 아름다운 풍경이다. 그러나 그 풍경 속에는 밤안개처럼 서린 어부들의 애환과 그것을 만들어내는 고달픈 삶의 구조들이 도사리고 있다. (p.14)
닫힌 사회에서 장치는 사람들을 ‘주체’로 만들어 내기 위해 고안되었다. 여기서 주체는 구성원이 스스로 창조적인 사유와 행위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닫힌 사회가 원하는 방식으로 ‘주체화된’ 것을 말한다. (...) 문제의 초점은 권력자가 아니라 시대의 욕망이며, 자유의지를 가지고 선택하는 주체에게 있다. 복종적 주체를 진정한 자유의 주체로 만들어내면서 포획과 억압의 장치들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푸코는 생생하게 살아있는 길들여진 정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야생의 영역을 가져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야생의 영역은 어디 있는가? 장치를 무력화하는 야성과 잉여를 생산하는 여유가 종교와 인간 안에 있을 수 있을까? (p.17-18)
1장. 장치에서 벗어나기.
종교의 현실이 사회에서의 규율, 제도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면, 종교는 오히려 하나의 장치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진정한 종교는 이 장치에 틈을 내어 신성의 영역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그 신성의 영역에는 놀이하는 야생의 아이가 있다. 이 아이는 촘촘하게 짜인 장치의 그물망을 빠져나가 자유롭게 놀이하는 아이, 점점 획일화 되어가는 세계 속에서 새로운 기억을 창조하는 아이다. 이 아이는 자신의 본래성을 회복한 진정한 주체이기에, 자아를 부추겨 우상적 주체로 사느라 삶을 소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아이는 살아있는 공동체의 한 지체로서 우상화된 자기를 극복한다. (p.59-60)
2장.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
농담하기는 가장 아름답고 촉발적인 생명력의 힘을 보여주는 비폭력 저항의 근거다. 공포와 두려움에서 시작한 저항은 오래 가지 않는다. 공포에 공포로 맞서는 방식도 오래 가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이 폭발하는 방식을 마련해야 한다. (...) 웃음은 혁명적이다. 비극 가운데서의 웃음은 장치와 억압의 두려움을 없앤다. 예술이든, 애정이든, 문화든 혹은 새로운 사유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촉발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옛 방식과 이별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만 기계화된 지배 질서, 패러다임, 규범적인 사유,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장치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p.101)
3장. 무의 사색.
효과적으로 다양한 일을 한꺼번에 하는 멀티태스킹과 생존의 본능으로 긴장하며 살아가는 수렵 자유구역의 모습은 현대 문명에서 발견되는 또 다른 강박의 얼굴이다. 무의 사색은 강박 을 풀어 헤쳐 가볍게, 그러나 생명력 있게 살아가도록 하는 삶의 쉼표와 선택적 느낌표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능동적 몰입이나 집중과는 약간 다르다. (...) 그것은 곧바로 본능, 생존, 호기심과 지배욕으로 연결되는 생각의 몰두나 조건에 맞춰서 살아가느라 염려에 매인 상태가 아닌 떨어지고 멈춰서 볼 수 있는 관조의 능력이다. (p.111-112)
4장. 타자, 사랑에 대하여
사랑은 새로운 타자가 와서 내 안에 있던 기쁨을 새롭게 배열 하는 법을 알려주는 계기가 생겼다는 신호다. 이전의 배열이 주었던 기쁨은 새롭게 이어지고, 고통은 새롭게 구성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이별을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아니 오히려 새로운 것을 우리 삶에 들여오기를 거부하며 우물 안에 갇히기를 요구하는 것들에 대해 이별을 선언하자.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와 마주치자. 그 새로움이라는 것이 새로운 어떤 사물이라든가 새로운 취미라든가, 새로운 이론일 수도 있고, 새롭게 일깨워 줄 깨달음일 수도 있다. 새로운 배열과 창조의 가능성을 만나 기 위해서 새로운 계기들을 만나자. 그리고 그 만남의 광장 속 에서 끝없이 쏟아져 내리는 각각 자기의 내적 필연성을 고집하지 말자. 내적 필연성이라는 것은 자기 삶에서 이미 흔적으로 형성된 고집스러운 주름들이기에. (p.167-168)
5장. via vita, 생생하게 살아있기.
삶의 곳곳에 숨겨져 있는 차이를 유연하고 변화무쌍하게 담아내는 과정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타자와 함께 춤을 출 때 우리는 때로 상대의 발을 밟기도 하고 자기 방식대로 상대방을 이끌고 가려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서로가 호흡을 맞추면서 함께 리듬을 탈 때 가장 아름답고 유쾌한 춤이 탄생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생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차이와 함께 춤을 추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비아 비타via vita, 삶 속에서 가장 자기다운 생생함, 기쁨과 고통이 함께 하는 리듬을 발견하면서. (p.210)
6장. 마음 공부.
한계는 양면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존에 자신이 살던 세계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갈망이 극대화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계에 부딪힐 때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가 얼마나 갇힌 곳인지, 동시에 자신의 갈망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선명하게 깨닫는다. … 정문일침頂門一鍼은 대극의 갈망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그 갈망을 다 담을 수 없는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는 역할을 한다. (p.222-223)
7장. 노마드의 집, 아버지의 집.
이전에 살았던 패러다임은 하나의 집처럼 우리 자신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왔던 방식이기도 하고 지금까지 사회적 조건화를 겪으면서 형성된 규약이기도 하다. 즉, 피로사회나 성과중심의 사회, 경쟁사회 안에서 만들어낸 룰이 우리 자신에게는 이전의 집인 셈이다. 그러나 새로운 집을 선택할 때는 ‘노마드nomad 주체로서’ 결정해야 한다. 노마드는 끊임없는 선택이자 이동이다. 이동하는 가운데 나의 집을 만들어야 한다. 움직이면서도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집을 갖고 있어야 하고 끊임없이 문을 열어서 사람들을 환대하고 받아들이고 소통해야 한다. (p.267)
8장. 영원의 유토피아, 신 없이 신과 함께.
결국 유토피아는 내가 도망쳐 온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시 어떤 희망을 가지고 힘을 내어 세상 속으로 당차게 걸어가야 할 그 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지옥같은 현실에서 공격당하지 않는 무엇이 아니라 끝내 그 현실과 타자와 접속하고 연결하기 위한 담론이 되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온통 디스토피아의 장치가 그물망처럼 짜인 덫에 빈 구멍을 내어 그 속에서 낙원을 만드는 법이 필요하다. 유토피아가 지금 우리의 삶의 일부로 느껴질 때, 죽음보다 더한 우리의 삶이 기적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일 테니까. (p.277)
4. 출판사 서평
개국 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물질과 문화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기이한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극심한 취업난‧경제난 때문에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에 이어, 집과 경력까지 포기한 “오포세대”까지. 차라리 10년 전의 “88만원 세대”가 부럽다는 이 시대의 청년들이 이토록 벼랑까지 내몰린 까닭은 무엇일까?
소진사회, 장치에 포획된 비극적 주체
저자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를 동해의 어느 밤바다로 인도한다. 밤의 해변에 나서면 검은 밤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과 가짜 안정감을 주는 수족관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집어등은 반짝이지만 오징어들을 포획하기 위한 ‘장치’이며, 상어가 없어 안전해 보이는 수족관은 실은 죽기 위해서 연명하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기이한 곳이다. 그렇기에 그곳은 진정성(authenticity)을 흉내 내는 가짜 생태계이며, 자기답게 삶을 살 수 없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조작된, ‘사물화된’ 존재들이다. 집어등과 수족관, 이 두 가지는 ‘소진사회’에서 사람들을 착취하고 소진하는 장치를 저자가 빗댄 말이다. 오늘날 시대의 억압은 ‘집어등’처럼 매혹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수족관’에서처럼 가짜 안정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작동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결국 사람들은 끝없는 억압과 경쟁, 소진 속으로 내몰린다.
그러나 물고기는 본디 바다에서 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다. 바다는 생존을 위해 움직이는 먹이사슬, 살아있는 고난, 번식을 위한 끌림과 욕망 등이 충만한 세계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본래적 생명력을 발현시킬 수 있는가? 더불어, 살아있는 개인 뿐 아니라 진정한 연대로서의 공동체는 어떻게 탄생할 수 있는가? 또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으로서 인문학적 소양과 종교는 어떻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물음이 저자가 이 시대의 ‘인간’과 ‘종교’에 던지는 화두이다. 그리고 이 화두는 곧 책의 제목인 ‘비극을 견디고 주체로 농담하기’로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비극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지만, 그 속에서 어떻게 희망의 주체로 설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을 탐구하려면 이러한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성찰해야 한다. 이 장치는 비단 신자유주의라는 거대 체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종교, 사회와 같은 거대 층위에서부터 광고, 인터넷 담론과 같은 미시적인 층위까지 모두 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자리, 종교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서는 이러한 장치에 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희망의 주체, 새로운 인간과 종교의 창조적 놀이터
희망의 주체는 이러한 장치에서 자유로운 생명의 아이다. 그 아이는 생생하게 사랑하며 삶의 화두를 놀이로 풀어가며 함께, 그러나 다르게 살기로 작정한 주체이다. 어떻게 우리는 비극을 넘어 그 숨겨진 아이의 웃음소리와 공동체의 연대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답은 바로, 우리 안에 깃든 신성(神性)과 그것을 삶의 구체적인 화두들과 풀어 연결시키는 연대의 과정에 있다. 이 과정은 우리의 안을 비추면서 동시에 단순한 내면 치유를 넘어 새로운 운동적 주체, 공동체적 주체를 탄생시킨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참 사람됨을 보여줘야 하는 종교의 역할을 알려준다. 또한 제도화된 종교가 어떠한 방식으로 체제내화되어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필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렌즈가 되기도 한다. 종교는 소진사회의 구조를 넘어서는 야성적 ‘생생함’을 제대로 구현해야 한다. 초월적 원형을 복구시켜 공공선의 창조적 생명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장치를 무력화하는 ‘야성’과 잉여를 생산하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삶과 타자의 차이에 예민한 감지력과, 영원의 잠재성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 실현되는 방식에 민감해야 한다.
특별히 이 책은 저자가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한 <인간과 종교>의 내용을 기초로 한 것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분야 저술지원 선정작이다. 단지 이론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청년들과 삶의 주요 화두들을 함께 씨름한다. 최고의 스펙, 최저의 고용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신경증적 패러다임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청년지성들에게 이책은 1) 장치에 포획당하지 않는 길을 모색하게 하고 2) 사랑, 집, 배움, 주체화, 일, 생생하게 살아있기, 종교적 가치관 등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작은 희망을 찾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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